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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 죽을 힘 다해 사선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의 험난했던 박광남씨의 탈북 여정 첫번째 이야기

  • 최신 특파원 korea@newskorea.ne.kr
  • 입력 2022.10.03 15:21
  • 수정 2023.01.0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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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남 사장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박광남 사장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편집자 주:

본지는 정치적, 종교적 중도 성향의 정론지로서, 자랑스러운 한민족, 한국인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한국인(탈북민, 고려인, 조선족, 한국계 동포 포함)들의 삶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듣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박광남씨의 보도가 결정되기까지 많은 고심이 필요했습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북한 대사관은 없으나, 북한 사람들도 자유롭게 출입국이 되는 국가이기에 혹여 박씨와의 인터뷰가 보도됨으로서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 특히 박씨가 꼭 한번 다시 만나고 싶어 하시는 따님의 안녕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어 여러분야의 전문가들과 많은 논의 끝에 박씨의 인터뷰 내용중 유추될수 있는 개인 정보를 제외하고 보도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북한에서 박씨의 따님이 아빠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잘 지내고 있다는것을 직,간접적으로 전달 되는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던 박광남씨와의 약속을 지키기로 결정 했으며, 뉴스코리아는 현재 전세계는 물론 북한에서도 접속 트래픽이 발생 하고 있는것을 확인 했기에 북에 두고 온 박광남씨의 가족들이 이렇게라도 아빠의 소식을 접할수 있기를 간절한 염원을 담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탸슈켄트=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 탈북민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 멀고도 험난 했던 지난 20년의 시간, 러시아 벌목공으로 시작한 그의 고난의 시간을 처음부터 재조명 해본다.

박,광,남, 그는 어엿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뿐만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둔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다만, 박광남씨의 신상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외한 북한의 엘리트에서 탈북자,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까지의 길고도 험난한 이야기들을 그의 입을 빌어 소개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항상 저는 마음의 빚이 있어요.

내 조국 대한민국에 빚이 있는 놈이에요.
나는 아주 큰 빚을 진 놈이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내가 처음에 한국에 갔을 때 땡전 한푼 없고 국적도 없는 놈에게 대한민국 국적을 줬죠. 
그 다음에 준 게 팬티부터 시작해 가지고 나에게 조국 대한민국은 모든 걸 아무 조건없이 다 줬어요. 

 

 

조국이 그렇게 했다는 거죠. 대한민국이?

그러니까 그게 물론 한반도가 하나라고 봤을 때는 뭐 윗 동네 아랫 동네 가릴 게 없잖아요. 근데 이게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보니까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우리 동네가 아니에요. 내 조국이 아닌 거예요.

근데 같은 민족이라고 정말 먹여주고 입혀주고 "너 처음에 이렇게 살아야 돼, 돈까지 쥐어주고, (세상천지)어디 그런 게 있어, 없어요.

 


박 대표님은 처음에 시베리아 벌목공 나가신 게 몇 년도쯤이세요. 

1995년에 처음 나갔어요.

 

 

벌목공으로 나가는것도 북에서 사상검증이나 나름 어떤 기준이 있지 않나요? 

북에서의 출신 성분과 신원 조회 기준에 적합해야 선발 될수 있어요 그것도 하고 싶다고 다 되는건 아니고요

 

 

1995년에 벌목공으로 처음 나가셨는데 북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처음에 나갈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나가신건 아니셨을 거 아니에요. 
나름 철저한 사상교육도 받으셨을 거고

제가 러시아 갈 때 목표가 천 불이었어요. 1천 불요.(1,000 USD) 원래 계약 기간이 3년이에요. 3년인데 1년에 천불은 못 벌어도 3년에 천불은 벌어오자 이런 목표였죠.

 

 

그럼 그 당시에 천 불이라면 지금 우리 돈으로 백만 원 좀 넘는 돈인데 3년에 천 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나가셨다는 거잖아요.

북한에서 천불이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백만 장자가 되는 거죠.
북한에도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편법으로 비즈니스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못하게 돼 있어요. 당에서 통제도 하고...

 

 

처음에 나갈 때는 그냥 딱 1천 불만 벌자 이런 마음으로 나가셨다고 하셨는데 박 대표께서 남쪽으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은 어떤 계기 때문에 결심을 하신 건가요

이게 풀자면 좀 긴데 간단하게만 말씀드릴게요

내가 정말 죽을 만큼 (당에)충성을 했어요. 
북한에서는 물론이고 또 (벌목공으,로)나와서도  내(신분적)위치가 그냥 일반 사람들이 있는 위치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3년 계약이 끝나니까 거기서의 내 위치가 없어지고 하다 보니까 당에서 저한테 귀국할래? 아니면 벌목공으로 다시 일을 할래? 이래요 그래서 내가 당에다가 제안을 했어요. 

내가 매달 100불씩 상납을 할 테니까 나를 좀 위치 좋은데로 다시 보내달라고 했어요, 식량 공급해주고 그 월급 정산해주고 하는 그런 위치에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경리 책임자 비슷한 재무 담당 같은 걸로 있으면서 돈을 한푼도 못 벌었어요. 왜냐하면 (돈)생기는 것 그대로 당에 상납을 한 거예요. 

저는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내자리가 갑자기 없어지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벌목공으로 가서는 돈을 벌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서는 러시아 사람조차도 구경을 못 해요. 러시아 사람들 자체를 만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기가 너무 깊은 산속이다. 보니까...

사실 나름대로는 생각을 했죠. "내가 매달 100불씩 윗선에 상납을 할 테니까 나를 그쪽으로 좀 보내주라" 했는데  운좋게도 그게 허가가 돼가지고  나를 따로 내보낸 거예요. 

이게 사실 북한에서는 상당한 불법이거든요. 근데 그 100불(상납)에 나는 자유를 조금 얻은 거예요.  근데 현실에 들어가 보면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서  백불 벌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은 우리가 100불 버는 게 쉽지만 그 100불 벌기가 있잖아요. 단돈 10불 벌기도 힘들어요.

내가 하루 종일 땅을 파주고 밭을 갈아줘도 한달 10불 받기 힘들어요. 당시에 근데 그게 겨울에 나가다 보니까 일도 없고 돈도 못 벌고 하다 보니까 한 달에 100불씩 당과 약속했던 상납금 액수를 제대로  못 지켰어요.

처음에 2~3개월은 그런대로 조금 지켰는데 한 3~4개월 정도는 두 번정도 상납액수를 제가 못 지켰어요.  그게 한 4~5개월 되니까 "야 이 새끼는 이게 아예 틀렸다. 
안 되겠다. 이거 정리해라" 이렇게 된 거예요. 

결국은 연합기업소에서 저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너 귀국 해라, 러시아 물을 조금 맛을 봤으니까, 이제 고향으로 가서 살아"  아~~!!! 이러는데 나는 또 그렇지가 않아요. 그러니까 단돈 몇백 불이라도 고향 가는데 가지고 가야만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당의 지시를 거부하고 한 번 피하고 두 번 피하고 세 번 피하고 한 네, 다섯번 피하다 보니까 이게 귀국 거부로 되버린 거예요. "야 이 새X 잡아서 보내" 이제 이단계까지 간 거예요.

근데 말입니다. 나는 분명히 죄가 없었어요. 내가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강도질을 한 것도 아니고 살인을 한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분명한(스스로 범죄라고 생각할만한 잘못) 죄가 없어요. 

나는 단지 내가 당에 상납하기로 약속했던 돈을 100% 못 지킨 게 몇 개월이 돼버린 건데, 당연히 상납을 받기로 했던 사람들은 나를 큰 죄인으로 취급하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이건 죄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한번 피하고 저렇게 한 번 피하고 하다 보니까 결국엔 한 번 붙잡혔어요. 

98년도 1월 8일 날 붙잡혔어요. 한겨울에 러시아에서 붙잡혀가지고 그때는 솔직하게 그랬어요. "아 이게 내 운명이다 운명에 순종해야 된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그때만해도 저는 운명에 순종하려고 했어요. 내가 수갑을 찼을 때까지만 해도 "북으로 가자, 가면 내가 한 2~3년  혹은 4~5년 썩을 수도 있겠지 감옥 가서" 근데 그 생각이 말입니다. 내가 붙잡혔던 곳에서 한 2~30 킬로 떨어진곳에 내가 옛날에 식량 공급해주고 월급 주고 했던 애들이 사는 콘테이너 박스가 있었어요.

여기가 겨울에도 철수 안 하는 이유가 건설하던 게 멈췄기 때문에 철수해버리면 장비니 뭐니 해서 다 잃어버릴까 봐, 최소인력으로 경비를 세우는 식으로 운영하면서그걸 그대로 놔뒀는데 그 콘테이너 박스로 나를 데리고 간 거예요.

솔직히 당시에 잡혀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아 이게 내 숙명이다. 이게 내 운명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해서 갔어요. 그런데 막상 갔는데 나도 연합사무소에서 일을 했었기 때문에 경범죄 중범죄를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조금 알거든요.

근데 내가 분명한 죄도 없는데 나를 완전 중범죄중에 최고 중범죄자로 취급을 했거든요. 최고 중범죄가 되면 어떻게 되냐면요. 북한으로 만약 내가 송환이 되면, 예를 들어서 러시아에서는 북한 사람이 잘못을 했다. 이렇게 됐을 때 호송하는 기간에 수갑을 채워 북으로 데려 갈 수가 없어요. 근데 내가 러시아에서 붙잡혔잖아요. 그렇게 되면 수갑을 채운 채로는 나를 못 데리고 가잖아요. 북한 입장에서는 어찌 되었건 러시아는 남의 나라니까요, 

그래서 얘들(북한)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조그마한 여행 가방 같은 게 있어요. 거기에 기구가 있어요. 8mm 철근으로 만든 기구가 있어요. 그걸 발에다 채우려면 바지를 벗어야 해요. 8mm 철근으로 해서 위에는 허벅지니까 윗부분이 좀 크죠 그리고 아랫부분은 좁아요. 

발목이니까 이걸  8mm 철근으로 만들었어요. 밑에 있잖아요. 발목 부분에 이걸 돌릴 수 있게끔 돼 있어요. 그러면 절대 뛰지를 못해요. 

근데 거기까지 붙잡혀 가서 수갑 풀고 그거를 하는 순간에 "나 이렇게까지 죄를 안 지었는데, 진짜 이거는 아니다." 싶더라구요, 제가 아는 바로는 이거를 하는 거는 중범죄자들을 호송하는 방법이거든요. 그래서 그때 거기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사실 북한은 내가 태어나고 먹고 자란 고향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저주스러워지기 시작 합디다. 내 딸, 아내, 형제, 부모까지도 눈이 안 들어와요 머리에 아무것도 안들어와요 내가 그때 몇 시간을 진짜 생각하는데 "내가 죽으면 죽었지 이 상태로 범죄자로 고향으로는 안 간다"는 이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20피트(ft) 보다 더 작은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면 양쪽으로 이렇게 마주 보면서 앉게 돼 있고 쪽창 밑에 그 창 받침대가 있었어요. 그 밑에 보니까 조그마한 칼이 있더라고요, 정비용 칼이었어요. 나는 생각도 못했죠. 근데 보위부 새X들은 그걸 못 본 거야, 근데 나는 그걸 본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을 한 거예요. "어떻게 할 것이냐?" 정말이죠. 영화도 그런 영화는 없어요. 

그 칼을 보는 순간에 저는 "이제부터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 칼을 몰래 취득하고, 그때가 러시아는 밤에는 영하 40도 이상이거든요,밤 10시가 지났어요. 아마 11시도 더 지났을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화장실을 갔어요. 저녁은 먹었고 이제 나는 화장실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거죠,

처음에 화장실에 갔을 때는 앉아서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도 영하 40도 이상인데 엉덩이 까고 그냥 화장실에 앉아 있었어요. 사실 너무 추워서 참기 힘들었어요, 그런데다 또 처음에 화장실에 갔을 때는 보위부 지키는 X이 화장실 옆에까지 따라 왔어요.

두 번째는 한 3~40분 있다가 속이 안 좋다고 하고 화잘실에 다시 가는데 얘(보위부)가 한 절반 정도 따라와서 지키고 있는 거예요. 그때는 내가 그렇게 오래 안 있었어요. 한 3~4분 정도? 근데 나를 지켜보는 보위부 애들이 있는곳은 화장실보다 조금 높게 지었어요. 화장실 올라가고 내려가고 할 때 이 다리 움직임이나 모든 동작들이 환하게 다 보여요 러시아 겨울은 달빛이 있으면 훤하게 보여요 사방이 다 눈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하얀 바닥에 나가서 내가 쩔뚝쩔뚝 걸어 가니까 바람 세게 불고 추우니까 보위부 애들이 먼저 콘테이너 박스로 딱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세 번째로 화장실을 갔죠. 역시 예상한대로 보위부 애들이 너무 추우니까 저를 안 따라와요,

나는 즉시 화장실 안에 들어가서 1분 50초에서 2분 안에 (다리에 채워진 족쇄를 푸는 일)이걸 끝내야 돼요,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도저히 못할것 같은데 그 상황에서는 나도 모르게 엄청난 괴력이 생기더라구요, 손으로 못을 돌리는데 그게 돌아갔으니까요, 그래서 족쇄를 풀어버리고는 화장실 밖으로 나 왔어도 그냥 (족쇄가)없는 것처럼 안 걷고 다르를 절룩이며 걸었어요, 2~3미터 제가 뒤뚱거리며 걷는걸 딱 보고는 보초 서는 애들이 먼저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가 버린 거예요. 
자기들이 생각했을때 그 다리로는 뛰어야 벼룩이니까 어딜 뛰겠어요라고 생각했던 거죠, 근데 그 지형을 내가 조금 알잖아요. 딱 들어오는 곳과 동시에 좌측으로 한 100m ~150m 정도에 큰 도랑이 있었어요. 겨울이니까 다 얼었고, 여기서 내가 뛰는 데서 떨어지면 도랑 깊이가 한 2~30 미터고 거기서 올라가려면 5~60미터쯤 됐어요.  그렇게 차이가 있어요. 한쪽은 낮고 한쪽은 높았고, 거기까지 내가 어떻게 뛴지 몰라요 , 그 언덕을 기어 올라가서는 쫙 퍼지는 거예요. 그래 거기서 도망쳐 가지고는  갈숲에 들어가서 엎어졌는데, 손, 발, 귀, 다 얼었어요.근데 목숨을 걸었으니까 그런건 안중에도 없었지요, 그날 상황을 그대로 말하면, 갈대, 그자리에 서 있던 갈대숲이 저를 살렸어요. 그렇게 탈출을 하고 한 10분 되니까 난리가 나버린 거예요. 
내 이름 부르면서 어느 쪽으로, 어느 쪽으로, 어느 쪽으로 가면서 막 난리가 났다.

그때는 또 뛸 힘도 없었어요. 만약 보위부 애들이 거기까지 오면 나 여기서 그냥 죽어서 묻힐란다. 체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사람이 있잖아요. 다급하다 보니까 숨이 안 쉬어져요.,  숨이 안 쉬어지고 조금 지나니까 목에서는 쇠 삐진 소리가 나요.
그냥 쇠가 녹이 쓸었을 때 물이 있잖아요. 쇠 비린내가 나고 목이 말라서 침이 없어요. 입안에 침이 없어,

내가 너무 열정적으로 얘기하는것 같은데요, 사실 제가 국정원에서 조사 받을 때도 그렇고 하나원에서 정책 교육 받을 때도 그렇고 그 뭐랄까 바꾸는 애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박광남씨의 탈북 이야기는 다음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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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남씨가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박광남씨가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5명의 북한식당 여종업들 모두가 탈북한 초유의 사태로 인해 지금은 폐쇄 된 타슈켄트 북한 식당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5명의 북한식당 여종업들 모두가 탈북한 초유의 사태로 인해 지금은 폐쇄 된 타슈켄트 북한 식당 @뉴스코리아 최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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